春潭 創學精神의 繼承과 發展
머리말
春潭 崔炳釵 선생님은 교육가로서 뿐만 아니라 한의사로서 사회봉사자로서 큰 업적을 남겼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春潭이 남긴 '雲月世稿' 등의 문헌은 春潭 스스로 교육자로서 인생에 큰 가치를 두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교육에 대한 春潭의 인식은 1947년 고향인 雲龍에 雲龍國民學校를 지어 국가에 헌납하고 1957년 9월 7일 鷺山 李殷相박사의 협찬을 얻어 光州市 鶴洞에 忠武公 李舜臣장군을 기리는 武光祠를 건립한 이후 여러 차례 그 방향의 전환을 모색한 결과 春泰學園의 설립으로 나타난 점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특히 春潭은 儒·佛·仙 등에 깊이 심취하여 人間第一主義를 바탕으로 抱元思想을 확립하였고, 이와 같은 抱元思想을 그의 교육사상으로 발전시켰다.
春潭의 교육사상은 그 자체만이 아닌 그의 민족관, 국가관, 세계관 및 사회적 배경 등에 미루어 종합적인 평가를 내려야 할 것이며 누군가 우리 민족 정서의 대종을 이루는 감정을 '恨'이라고 하였는데 春潭의 교육사상중 상당부분이 '나라 잃은 설움의 恨'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恨' '못 배움의 恨' '신념을 달성하겠다는 의지' 등이 끈끈하게 점철되어 있다.
본고에서는 앞서 말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春潭의 생애와 교육사상 그리고 창학정신을 분석하여 봄으로써 春潭의 사상을 보다 잘 이해하고 급변하는 제3의 물결 속에 서 있는 우리들의 정신적 지표를 세우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Ⅱ. 창학정신의 배경
春潭은 1907년 5월 9일 전남 谷城郡 石谷面 雲龍里에서 父親 草溪 崔炅奐公과 母親 金海 金氏 사이에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어린 시절을 엄격한 부친으로부터 유교적인 학문을 익혀 6세에 推句, 12세에 이미 大學과 論語, 周易 등을 통달하고, 그의 나이 17세부터 신학문에 대한 강렬한 욕구로 인하여 順天 松廣寺에 들어가 한문과 한의학, 불교사상에 전념하게 된다. 이 시기가 春潭의 사상정립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春潭은 그의 학문적 입지를 세우기 위해 23살 때 일본에 건너가 오오사카에 있는 하마대라 鍼灸學校에 입학, 鍼灸學에 몰두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한 후 귀국한다. 春潭은 귀국후 한의술로 고향사람들은 물론 전국 각지의 환자들을 병마에서 구하였으며 명성도 얻었으나 春潭은 이에 만족치 않고 [어떻게 사는 것이 보람있는 삶일까?]를 나름대로 정립하여 육영사업에 뜻을 두었으며 이에 春泰學園을 설립하여 1960년 4월 28일 학교장에 취임함으로서 그의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春潭의 교육사상은 그의 저서 '雲月世稿'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우주 삼라만상의 이치를 깨달아 '空手來 空手去'라고 하는 대자연의 원칙과 人間 最貴의 입장에서 儒·佛·仙에 깊은 관심을 가지셔서 孔子의 儒敎思想, 釋迦의 佛敎思想, 老子의 仙敎思想을 실천하기 위하여 忠武精神, 不二敎儀, 字宙同人을 바탕으로 하였다.
春潭의 교육사상을 논함에 있어서 또 하나의 특징은 우리 나라의 많은 사학 설립자가 정치와 교육의 양갈래길에서 정치휴식 시기의 공백을 메우려고 학교를 설립 운영한 예가 허다한데 春潭의 경우는 雲龍國民學校와 新農中學校를 아무런 조건 없이 국가에 헌납하였고 모든 사재를 털어 全南女商高 이전을 위한 부지확보 및 건물신축에 온 정성을 쏟았던 것을 보면, 그리고 그는 입버릇처럼 '春泰는 나의 전 생애이며, 나의 모든 목표'라고 말했던 것 등에서 그들과의 다른 점이 있지 않나 싶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 사학의 학교분위기가 상의하달식이고 관료적 색채가 농후했으나 春泰學園이 갖는 다른 어느 사학보다도 자유로운 분위기는 春潭의 자유민주사상과 직접 연관됨을 알 수 있다.
또한 春潭은 오랜 학교 경험과 인술을 통해서 얻은 경험으로 보편적 세계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도 경시되어질 수 없다. 春潭은 편협한 마음으로 당장의 결과를 기대하기보다는 교육본연의 자세에 충실한 학교가 그의 이상이었다.
이와 같이 春潭은 儒·佛·仙의 동양윤리외에도 자유민주주의 사상과 세계적 보편주의 등 서양윤리도 함께 담고 있어 동양과 서양의 진리를 추구한다는 사상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본고에서는 이상에서 살펴 본 청학정신의 배경에서 현실적으로 구체화되어서 나타난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Ⅲ. 창학정신의 내용
1. 도덕교육
春潭의 '雲月世稿'에 의하면 儒家에서는 孔子를 중심으로 存心養性執中으로 三綱五倫을, 佛家에서는 釋迦를 중심으로 明心見性에 萬法歸一로 三歸五戒를, 仙家에서는 老子를 중심으로 修心鍊性에 抱元守一로 三淸五星을 세우셨는데 그 강령을 三·五로 대별한 점과 그 바탕인 마음 심(心)이 같아, 결국 儒·佛·仙이 합하여 誠心을 이루면 세상을 평화롭게 다스릴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전 인류가 無戰爭, 無疾苦, 無飢寒의 3대 공포를 해결하려면 말도, 이론도, 이유도 다 필요 없고 누구나 솔선하여 謙讓, 勤儉, 忍耐의 3대 요소를 실천하는 것이 평화의 선구자가 되는 원동력이 된다고 하였다.
春潭은 儒·佛·仙 중에서도 仙敎에 심취하시어 抱元守一 三淸五星이라고 하는 抱元思想을 확립하셨다.
抱元守一이란? 크나큰 한 원(元)이 되려면 광운(廣運)만한 것이 없느니라. 크면서도 한계가 없는 것을 광(廣)이라 하고 행(行)하면서도 끊이지 않은 것을 운(運)이라 한다.
대원(大元)을 잘 운행하면 그 변화를 다 헤아릴 수 없는 고로 아주 크구나 건원(乾元)이여 만물이 이로부터 시작되고 자극하구나 곤원(坤元)이여 만물이 이로부터 생성한다. 그러므로 포원이라 한다.
천지의 넓은 원기를 몸 속에 충만케 하면 仁·義·禮·智·信이라고 하는 다섯 가지 도의가 마음속에 느끼어 움직인다. 오직 우리 인생은 이 넓은 원기(元氣)를 안아 갖도록 수양을 쌓아야 한다.
일(一)이라는 것은 우주만물의 근원인 본체다. 우주만물의 본체가 세워지면 음과 양(하늘과 땅)의 두 기운이 생기고 만물이 창시되었다. 그 연후에 다시 처음의 근원으로 돌아가 수일(守一)을 얻을 수 있다. 오직 우리 인생은 오로지 일(一)을 공경하고 지켜야 한다고 하였다.
「大化一元而無爲廣運大而無外曰廣行之不息運大而能運則變化不測故大哉乾元
萬物資始至哉坤元萬物資生故曰抱元.
天地之浩然元氣充寒于身感發於五常仁義禮智信是也惟我人生抱此元氣而修養焉
一者太極也太極立而兩儀生而萬物創始然後復得還元守一惟我人生以一敬修焉」
三淸五星이란? 仙家에서는 마음(心), 기(氣), 꿈(夢)을 맑게 하는 귀감과 계율이 있는데 오랜 세월로부터 지금까지 지극한 교훈으로 이어져 왔다. 이 三淸이 잘 이루어지면 청전지청(靑田之淸), 단구지청(丹邱之淸), 낭원지청(苑之淸)이 모두 인간 살이 속에서 이루어진다. 오직 우리 인생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三淸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늘에는 金·木·水·火·土의 五星이 있고 인간에게는 仁·義·禮·智·信의 五常이 있어 우리 인생은 이 五常을 체
득하고 이 五星을 살펴서 우리의 심령을 밝게 하면 영대(靈坮)가 커지고 백체(百體)가 다 이에 따른다고 하였다.
仙家有心淸氣淸夢淸之戒鑑而此永垂至訓於此三淸靑田之淸丹邱之淸苑之淸
都歸物我有間則惟我人生以前三淸配後三淸可也.
天有金木水火土五星人有仁義禮智信五常惟我人生體此五常而察此五星鑑照心
靈靈坮泰然百體從令」
春潭은 抱元思想에서 인간은 仁·義·禮·智·信의 도의를 쌓아야 하며 하늘의 이법을 공경하고 지켜서 자기의 주체인 마음을 중요시하였으며 자기 수양의 방안으로 三淸精神을 제시하였다.
三淸이란? 자기 마음을 맑게 하고(心淸), 자기의 기운을 맑게 하고(氣淸), 자기의 꿈을 맑게 하자(夢淸)는 뜻으로 마음을 맑게 하였을 때 마음의 평화가 있으며 사회가 평화로워지고, 기운을 맑게 하였을 때 이웃과 사회가 화목하여지며 자기와 사회가 발전할 수 있고, 꿈을 맑게 하였을 때 희망찬 내일의 진보와 발전이 있다는 신념에서 마음 가꾸기의 지표로서 제시하여 도덕교육의 중요한 자료로 삼았다.
2. 민족교육
春潭은 어린 시절 일본의 합병으로 나라 잃은 설움 속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 민족을 구할 수 있는가? 하고 많은 갈등과 방황을 하다가 자기 나름의 해답을 얻기 위하여 順天 松廣寺에 들어가게 된다. 그는 松廣寺에서 학문적 의지를 불태우기 시작하여 결국 민족을 구하는 방법으로 한의학에 전념하게 되고 일본으로 유학하여 鍼灸學을 공부하여 인술을 베푸므로서 민족해방에 기여하게 된다.
春潭은 해방후 다시는 외부로부터 침략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忠武公 李舜臣장군을 주벽으로 임진왜란 때 구국의 횃불을 높이 드신 이 고장 출신 여섯 분의 선열 文烈公 金千鎰, 錦溪 魯認, 忠壯公 金德齡, 睡隱 姜沆, 忠壯公 鄭運, 水使 宋希立의 정신을 추모하고자 武光祠라는 사당을 1957년 9월 23일 光州市 鶴洞에 건립하고 이들을 함께 모셔 해마다 李忠武公 탄신일인 4월 28일에 춘향제를, 기일인 12월 16일에는 추향제를 지내게 된다. 그러다가 이와 같은 민족정신을 구현하기 위하여 1966년 11월 9일에 春泰學園을 설립하여 忠武精神을 건학이념으로 삼는다.
春潭은 李忠武公 정신을 계승하고 조국통일과 민족적 번영을 위한 선구자적 인재를 육성하기 위하여 1967년 10월 15일 全南女商高를, 1985년 11월 7일 全南外國語學校를, 1989년 9월 21일 國際高等學校를 설립하게 된다. 그리고 해마다 춘향제와 추향제를 학생들과 봉행하여 忠武公의 5대 정신인 愛國愛族, 自主自立, 創意創造, 廉潔無私, 敢戰必勝을 학생들의 마음속에 심어 인생관 정립에 도움을 주고자 최선을 다했다.
3. 사회교육
春潭은 全南女商高, 全南外高, 國際高의 건학이념으로 不二敎儀를 내세웠다. 春潭은 不二라는 것은 불경가운데 능엄경과 연화경에서 나온 말로서 석가의 제자중 문수보살이 석가 입적 후에 아란존자란이에게 '우리의 道는 不二其法이다'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고 하면서 불교윤리의 핵심이며 때묻지 아니한 精純한 사랑인 慈悲精神을 심는데는 自他不二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自他不二란 [나]와 [너]는 둘이 아니고 하나다. [나]와 [너]가 共同體로서 새로운 인격을 다져나가는 [우리]로서의 인간관계의 목적을 요약한 말이다. 결국 나 자신이 너의 존재에 기여함으로써 나 자신의 존재를 보장하고 너 자신이 나의 존재에 기여함으로써 너 자신의 존재를 보장하는 협력관계이며, 공존의 관계이며, 본래적 인간관계인 것이다. 하나의 생명이 태어났다면 그것은 하나의 "인간"으로 성장하여 "우리"로서의 훌륭한 인간관계를 맺고 무수한 나의 존재를 보장해 주는데 기여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나에 대해선 다시없이 귀중한 너인 것이다. 즉, 공존의 톱니바퀴의 하나인 것이다.
春潭은 不二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우리라고 하는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기 위하여 사회교육에도 힘썼다.
春潭은 한의학과 침술을 보급하기 위하여 한의학과 침술 강의서를 만들고 직접 강의와 실습을 함으로써 이백여명의 제자를 양성하기도 했다. 지금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인술활동을 펴고 있는 제자들이 매년 모임을 갖고 春潭記念事業會를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春潭記念事業會에서는 春潭이 생전에 비법으로 사용한 처방전을 연구하여 쌍봉환이라고 하는 한약을 개발, 특허 신청중에 있으며 춘담회관과 춘담제약히사 건립에도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春潭은 불교문화 발전을 위하여 順天 松廣寺 종각과 삼존불, 光州 證心寺 대웅전 삼존불, 谷城, 在天寺, 光州 鶴洞 大光寺 등을 건립하여 후진들의 본보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和順 二西 赤壁에 三明閣이라는 도서관을 건립하여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에게 공부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기도 했다.
春潭은 항상 직업교육, 생활교육, 기술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돈이 없어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가난한 소년들을 위하여 春泰女子商業高等學院을 열어 공장 직공, 상점의 사환들을 대상으로 노동야학을 시작하였으니 이 또한 사회교육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또한 春潭은 1977년 2월 25일 국가로부터 산업체 특별학급을 인가 받아 직장에 다니면서 야학하는 학생들에게 배움의 길을 터주기도 하였다.
春潭의 이와 같은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는 사회교육에의 헌신은 지역사회의 번영과 발전은 물론이거니와 국가사회 발전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된다.
4. 여성교육
春潭은 아이가 바르게 성장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어머니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므로 어머니는 늘 마음으로, 행동으로 아이를 교육시키는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곧 李忠武公이 있기까지는 李忠武公의 어머니가 훌륭했기 때문이고 李 栗谷도 栗谷의 어머니 申師任堂이 훌륭했기 때문에 훌륭한 인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여 全南女商高 건학이념의 하나로 婦德涵養을 제시하였다. 또한 春潭은 국가발전을 앞당길 수 있는 길은 남성보다는 여성교육을 잘하는 것으로 특히 여성의 두뇌개발이 필요하며, 실로 여성두뇌의 힘이야말로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 무한대의 발전을 보일 수 잇는 가장 위대한 힘이라고 강조하면서 올바른 여성교육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시급한 일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春潭은 여성의 두뇌개발 및 婦德涵養을 위해 학교설립에 뜻을 두어 훌륭한 국민은 훌륭한 어머니의 훈도로써 이루어지며 오늘의 여성은 과거의 나약한 여성이 아니라 생산적이고 경제에 밝은 튼튼한 여성이어야 한다고 믿어 全南女商高를 세운 것이라고 하셨다.
이와 같은 春潭의 여성교육에 대한 신념은 지역사회 발전과 국가발전의 초석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5. 미래교육
교육이 현실의 현상을 설명하던 시대는 오래 전에 지난 것 같다. 예전의 교육이 걸음마 하던 데서 뛰는 능력을 갖추는데 목적이 있었다면 오늘의 교육은 어떻게 하면 더 빨리 더 높이 오를 수 있는가를 신체구조의 특징에 맞춰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데 존재의의가 있다고 본다. 앞서도 지적했듯이 春潭은 70년 초에 이미 교육근대화 작업을 추진하고 80년대에 들어와 미래대비의 교육으로 외국어 교육의 도입을 주장했었다. 즉 인재의 양성은 앞을 내다보고 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학교에서 배운 이론들이 시행착오적인 것이 많은 것을 느끼는데 학문을 하는 우리 모두의 입장에서는 春潭의 이러한 앞을 내다보는 미래지향적인 교육자의 태도는 큰 경종이라 아니할 수 없다.
春潭의 미래교육에 대비한 정신은 이미 지적한 五星의 의미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곧 春潭은 우주의 근원은 인간이고 우리 인류는 한 가족이라는 생각과 우주의 자연과 인간의 윤리의 조화 속에서 모든 인류가 같다라는 인류애의 정신인 '宇宙同人'정신을 통하여 폭넓은 가치관과 인류발전에 대한 확실한 미래상을 정립하도록 제시해 주었다.
현대는 국제화 시대, 지구촌 시대로 세계가 하나로 되어 가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보면 春潭의 이러한 선각자적 입장을 잘 알 수 있으며 또한 앞으로 전개될 우주산업사회와 은하계사회를 내다보는데 많은 도움을 얻으리라 생각된다.
6. 春潭의 의미
오늘날의 春泰學園의 春泰라는 이름은 설립자이신 春潭 崔炳釵선생님께서 "春是時之和者也, 泰是國之泰平也." 즉, 春은 이때의 和함을 말하고, 泰는 이 나라의 태평을 말한다고 하시면서 和는 인간들의 상호노력으로 얻어지는 경지이며 만물을 자생시키는 힘이 나온다 라고 말씀하셨다.
우주본체를 탐구하여 보면 우주의 근원인 道로부터 一氣가 생기고, 이 一氣에서 陰과 陽의 二氣가 생기어 陰陽이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서 만물이 저절로 생성된다. 그리고 다시 陰陽이 하나가 되어 우주 만물의 근원인 본채로 되돌아간다고 하는 守一의 정신을 바탕으로 春泰의 의미도 太極의 원리로 해석해 볼 수 있다.
春泰는 한 근원에서 春이라는 陰과 泰라는 陽의 두 기운으로 그 모양은 ◐로 만물을 생성하고 키워나간다고 하는 뜻인 동시에 因果의 의미로도 볼 수 있다. 그래서 春은 모든 만물을 힘차게 소생하게 하는 생기 있고 희망에찬 계절로서 모든 학문과 사상과 문화의 창조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으며, 泰는 모든 만물을 보다 더 성장시키는 것으로 모든 학문과 사상과 문화를 발전시켜 융성케한다는 의미라 하겠다.
春泰의 동산에서 너와 나의 만남은 너와 내가 하나가 되어(同人) 사회와 민족의 역사에 꼭 있어야 할 만남이 될 것이다.
Ⅳ. 맺음말
이상에서 살펴본 春潭 崔炳釵선생님의 창학정신을 우리가 계승 발전시켜야 할 점을 중심으로 서로 연관지어 보면 다음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으리라 본다.
첫째로, 春潭의 교육사상은 儒·佛·仙을 바탕으로 하고 抱元思想을 중심으로 하여 春泰를 참된 인간수양의 도장으로 참된 인간과 미래지향적인 인간을 양성하겠다는 의지가 오늘의 우리가 계승해야 할 점이라고 본다. 그리하여 인격도야에 정진할 수 있고 미래사회로 지향하는 교육프로그램도 꾸준히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로, '春泰'라는 단어의 의미를 창학정신에 비추어 재조명해 보아야 하리라 본다. 春泰의 동산에 터전을 마련한 春潭의 혜안은 인재양성, 학문연구, 문화창조의 중심지로서 三角山에 그 기반을 조성했었다. 우리는 내일의 세계를 조망하여 문화와 교육의 중심지로서 '春泰'의 터전을 가꾸는데 소홀한 점은 없는가 반성해 보자.
셋째로, 제반 학사행정의 선진화로 내실을 기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구하는 학풍을 진작시키는 일과 효율적인 교육행정, 타에 뒤지지 않은 복지학교를 계속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의 학교, 민족의 학교로 발전시켜 春泰學園이 명실공히 光州문화와 교육의 중심이 되도록 우리 모두 설립자 崔炳釵선생님의 창학정신을 오늘에 구현키 위해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때다.